'비선출이지만 괜찮아' 라오스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 꿈 키운 한국 청년 이야기

일반/e스포츠 / 임재훈 기자 / 2020-01-22 18:11:57
▲장시형 씨(사진: 스포츠W)

 

[스포츠W 임재훈 기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야구를 잘 못해도 야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힘만 센 타자도, 볼이 느린 투수도, 벤치에서 응원만 하는 멤버도 모두 경기의 일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야구의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하기 위해 파견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 1기 단원으로 지원한 장시형 단원이 자기소개서에 적은 문구 가운데 일부다.

현재 라오스 국립대 ‘뉴올 미라클’ 팀 선수들 사이에서, 그리고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 내에서 ‘장시형 감독’으로 통하는 그는 라오스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꿈꾸고 있는 특별한 야구인이다.

사실 그는 이른바 ‘선출’(선수 출신)이 아니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기는 했으나 엘리트 스포츠 선수로서 야구 선수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다.

그저 야구가 좋아 ‘비선출’로서 대학 동아리에서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었고, 독립 리그 야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고, 어린이들과 사회인 야구팀 선수를 지도하면서 야구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선출’로서 전문 야구인 못지 않은 역량을 갖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한계에도 부딪혔다. 그런 와중에 선택한 길이 라오스 야구 보급을 위한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이었다.

함께 독립 리그 야구단에 몸담고 있던 동료들의 회의적인 시선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 장시형 씨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코이카 봉사단에 합류했고, 정신 없이 1년이란 시간을 라오스 야구를 위해 쏟아 부었다.

지난 1년여간 그는 라오스 국립대학 야구팀 ‘뉴올 미라클’을 만들고, 선수들을 모으고 지도하고, 라오스 최초의 야구 리그 ‘코이카컵’에 참가해 한 시즌을 치러냈다. 1년 이라는 물리적인 시간 안에 이뤄낸 성과치고는 정말 많은 일을 해낸 셈이다. 

 

▲라오스 국립대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시형 씨(사진: 스포츠W)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코이카컵 라오스 야구 리그에서 라오스 국립대 야구팀은 여자팀이 8경기를 차러 1승 7패, 남자팀은 3승5패로 남녀 모두 3팀 중에 3등을 했다.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이 함께 창단시킨 비엔티안 고등학교보다도 순위가 낮다. 하지만 장시형 씨는 이 결과를 결코 나쁜 결과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학교측으로부터 선수 모집이나 홍보에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인원수도 고정된 인원이 아니어서 연습을 따로따로 하다 보니 다 같이 연습할 수 있는 시간 부족했죠. 나름대로 야구를 하고자 하는 인원들이 모여서 노력했기 때문에 결과가 무조건 안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내년 리그를 위해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팀에게 순위가 뒤진 부분은 내년에는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자팀의 경우 비엔티안고에 1승 3패로 부진했어요. 다음 시즌에는 좀 더 인원을 많이 모집해서 고정된 인원을 가지고 선수 수급 걱정 없이 리그에 임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대학셍들이니까 고교생들보다는 좀 더 좋은 성적으로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웃음)

어찌 보면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팀 스포츠로서의 야구, 참여하는 스포츠로서의 야구에 대한 가치를 장시형 씨는 라오스에서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에 지원하면서 자기소개서에 적었던 ‘모든 구성원이 야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문구의 실체를 라오스 국립대 팀을 이끌면서 확인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스포츠W


장시형 씨를 만난 날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12일로 그는 라오스 국립대에 마련된 인조잔디가 깔린 야구 연습장에서 휴일을 이용해 자율 훈련을 하기 위해 나온 선수들에게 펑고를 쳐주며 함께 여습하고 있었다.

휴일에 학생들과 함께 땀을 흘리는 일이 귀찮고 힘겨울 법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휴일 훈련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평일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해서 시간이 없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평일에 훈련이 안 되는 학생들의 경우 주말에 나와서 자율 연습으로 함께 연습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다기 보다는 보람 있다는 느낌이 강하죠”

휴일 연습에 참가한 여자 선수들의 실력을 잠시 살펴봤다. 장시형 씨가 배트로 쳐준 공을 글러브로 잡아 그물이 쳐져 있는 한 곳에 던지는 훈련이었다. 연습 초기 공을 잡지 못하고 뒤로 흘리기 일쑤였던 학생들은 연습 시간이 이어지고 반복 훈련이 이어지자 어느 순간 어려운 코스로 굴러가는 공도 척척 잡아냈다. 

 

▲사진: 스포츠W

 


장시형 씨는 연습 중에 실수하는 학생에게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질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시종 담담하게, 때로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학생들과 호흡했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지나놓고 보니 그런 태도는 라오스 학생들로부터 배운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실 제가 저 친구들을 가르쳤다기 보다는 오히려 저 친구들에게 내가 배운 것 같아요. 이 친구들은 화를 잘 안 내요. 뭘 하든 간에 ‘보뺀냥(괜찮아)’ ‘다시 할 수 있어’ 이런 마인드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저도 훈련을 하면서 ‘그거 아니야’ 이게 아니라 ‘괜찮으니까 다시 한 번 해봐’ 이런 마인드를 갖게 됐죠.”

라오스에서의 생활은 다른 면에 있어서도 야구 지도자를 꿈꾸는 장시형 씨에게 도움이 됐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같이 야구하다 가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까 그래도 30명 정도 되는 인원의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장시형 씨의 봉사단 생활은 이제 한 달 남짓 남아있다. 2월 말이면 활동을 마무리 하고 귀국해야 하지만 그는 한 두 달 더 라오스에 머물며 라오스 국립대 선수들의 훈련을 도울 생각이다. 학생들과 정도 많이 들었지만 당장 자신이 귀국했을 경우 새로운 지도자가 오기까지 야구를 할 수 없는 공백이 생기는 부분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 장시형 씨가 마음 든든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엘리트 야구 선수 출신의 봉사단원 박성중 씨가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 2기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비엔티안 고교 학생에게 수비 지도를 하고 있는 박성중 씨(사진: 스포츠W)

 

 

박성중 씨는 고교시절까지 엘리트 선수로 뛰면서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에까지 발탁됐던 경력과 코치로서의 경력까지 겸비하고 있다. 그는 아직 교육기간이지만 코이카컵 야구 리그 마지막 날 심판으로 나서기도 했고, 잠시지만 비엔티안 고교 선수들의 훈련을 돕기도 했다.


장시형 씨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라오스 학생 선수들의 야구 실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후임 봉사단원이 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갑다.

“저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정말 좋은 동료가 들어왔다고 생각해요.”

아직 정확한 귀국일정이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이제 장시형 씨에게는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새로운 선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일단 야구 지도자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능성을 타진해 볼 생각이다. 일단 국내 독립 리그 야구팀 입단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일본 쪽에도 눈을 돌려볼 계획이다. 물론 라오스에 다시 올 계획도 가지고 있다. 단, 지도자로서 역량을 더 키운 이후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다.

야구 지도자를 향한 그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적어도 현 시점에서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은 역시 ‘맨땅에 헤딩’을 해봤다는 것이 될 것이다.
 

▲장시형 씨(사진: 스포츠W)


야구의 ‘야’ 자도 모르는 라오스 학생들에게 야구의 존재를 알리고 야구를 가르치고, 선수로 키워 리그까지 치러낸 그의 이력은 국내 어느 야구 지도자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경험이자 역량이다.

이런 경험과 역량이라면 언젠가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아직 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야구를 보급하고 그들과 야구를 함께 즐기는 야구 전도사로서 새로운 미션을 갖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라오스에서 보낸 지난 1년의 시간이 그로 하여금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자신 있게 야구 인생을 펼쳐갈 힘을 키워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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