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눈] '박지수 작심 발언' 여론몰이가 안타까운 이유

농구 / 임재훈 기자 / 2020-02-13 14:41:45
▲사진: 스포츠W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고 지난 1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문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 B조 리그에서 같은 조의 스페인, 영국, 중국을 상대로 1승 2패의 선적으로 조 3위를 차지, 도쿄올림픽 여자농구에 참가하는 12개국 안에 포함됐다. 

 

당초 한 팀만 제치면 올림픽 티켓을 딸 수 있는 상황에서 1승 상대로 지목했던 영국을 계획대로 잡아내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결과만 놓고 볼 때 이번 세르비아 원정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 기간중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 내용으로 인해 '금의환향'의 분위기로 들썩여야 할 인천공항 입국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한국 대표팀은 영국에게 이기기는 했지만 한때 17점 차까지 앞서다 한 점차까지 추격당하는 아슬아슬한 경기를 펼친 끝에 가까스로 이겼고, 스페인과 중국에게는 엄청난 점수차로 패했다. 경기 일정이 너무도 타이트 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상 외의 대패였다. 

 

이런 이유로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불만 어린 여론이 터져 나왔고, 이번 대회 3경기를 주전 선수 위주로 치른 데 대한 선수 혹사 논란이 불거졌다. 그리고 그 끝에 이문규 감독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졌다. 

 

이날 입국장에서 대표팀을 기다리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유혈사태'라는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누가 누굴 때리고 피가 나고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날 기자들과 이문규 감독의 인터뷰가 살벌한 분위기로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로 '유혈사태'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었다. 

 

잠시 후 선수단이 입구장으로 나왔고, 미리 마련된 장소에서 방열 대한민국 농구협회장이 입국한 선수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넨 다음 꽃다발을 전달하는 간단한 환영행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이어진 감독, 주요 선수 인터뷰에서 예견됐던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모인 기자들이 이문규 감독에게 혹사 논란을 비롯한 대표팀 운영 문제에 대한 날 선 질문을 쏟아냈고, 이문규 감독은 한치의 물러섬 없이 자신의 논리를 피력한 것. 공항에서 이뤄지는 인터뷰 치고는 무척이나 길었고, 분위기는 청문회를 연상시켰다.

 

▲이문규 감독(사진: 연합뉴스)

 

이문규 감독의 인터뷰 이후에는 대표팀의 기둥인 박지수(청주 KB스타즈)와 이번 올림픽 예선에서 베스트5에 선정된 박혜진(아산 우리은행)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렇게 어수선하고 다소 험악했던 분위기 속에서 여자농구 대표팀은 해산했다. 협회 관계자들도 선수들도 마치 뭐에 쫓기듯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그리고 다음날인 12일 국내 언론에서는 소위 '박지수 작심 발언'이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전날 박지수가 인터뷰에서 중국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해 "창피하다고 느꼈다"는 표현과 함께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이번 대회에 참가한 우리 대표팀에 대해 '문제점'을 언급한 것을 두고 박지수가 작심하고 이번 올림픽 예선에 출전한 대표팀 운영을 비판했다는 보도였다. 

 

주전 선수들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문규 감독의 용병술과 팀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강조하는 데 박지수의 '작심 발언'을 근거로 활용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결론은 이번 올림픽 예선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은 이문규 감독의 책임이고, 그러므로 도쿄올림픽 본선을 준비하면서 이문규 감독 체제를 더 이상 끌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거의 모든 언론이 이와 같은 논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이문규 감독의 팀 운영이 엉망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보면 '몰아가기'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보도의 방향이 한 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모양새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점은 현장에서 박지수의 인터뷰를 함께 했던 기자 입장에서 과연 당시 박지수의 발언이 대다수 언론이 말하는 대로 '작심 발언'이었나 하는 점이다. 

 

물론 박지수의 발언 가운데 외국 대표팀들과의 평가전 추진 등 협회 차원에서 지원이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기도 했지만 박지수의 발언은 전반적으로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경기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박지수(사진: 연합뉴스)

 

이 역시 기자의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시 박지수가 수 많은 언론사의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작심하고 감독의 팀 운영을 비판하기 위해 '창피'라는 단어나 '문제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고 보여진다. 

 

한 마디로 박지수의 발언은 협회의 부족한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함께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낸 코칭 스태프를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이번 올림픽 예선에서 이문규 감독의 팀 운영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는 언론사마다 각자의 판단이 있을 것이고, 그 판단을 칼럼 형식이 됐든 해설 형식이 됐든 보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근거로 선수가 한 발언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문규 감독이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고, 그 결과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질 것인지는 협회의 공식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 토론하고 결정하면 될 일이다. 

 

그 논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언론은 협회에 여론을 전달하고 바람직스러운 대표팀 운영 방향을 다양한 근거를 내세우며 제시하면 된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가장 안타까운 점은 한국 여자농구가 12년 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역들은 충분히 환영받지 못했고, 다시 정규리그 일정을 재개하는  여자 프로농구 역시 올림픽 본선 진출의 성과를 흥행으로 이어지도록 만들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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