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 라오스 소녀들, '미지의 세계' 야구에 빠지다

일반/e스포츠 / 임재훈 기자 / 2020-01-16 09:24:41

지난 1월 10일 오후 3시경.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위치한 비엔티안 중고등학교(Secondary school)운동장에는 수업을 마친 이 학교 남녀 학생들이 드넓은 운동장에서 농구, 배드민턴, 축구 등을 즐기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체육대회에서 펼칠 공연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잠시 후에 있을 야구부 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운동장 한 켠에 마련된 야구부 사무실로 향하는 야구부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야구부 사무실로 사용하는 공간은 야구 용품을 보관하는 창고의 역할을 하면서 이 학교 야구부원들과 이들을 지도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 대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류수민 대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제리(사진: 스포츠W 임재훈 기자)

 


이 시각 야구부 사무실에는 윤소희, 류수민 대원이 야구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들을 만난 야구부원 학생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코이카 단원들에게 풀어 놓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 학교 6학년(18세)인 제리는 류수민 대원에게 꼭 안겨서 온갖 애교와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머지 않아 학교의 최고학년이 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 할 나이지만 코이카 대원 언니 앞에서는 그저 천진난만한 어린 동생일 뿐이었다.

윤소희 대원 역시 남녀 야구부원들 틈에서 능숙하게 현지 언어를 구사해 가며 장난도 치고, 수다도 함께 떨고 있었다. 잠시 후 나타난 여자 야구부원 끼도 수다의 대열에 합류해서 대화를 주도했고 종종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봉사대원들은 “끼가 끼를 부리고 있다”고 ‘아재 개그’성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렇듯 코이카 대원들을 대하는 비엔티안 중고교 야구부원 학생들은 마치 여러 해 함께 동고동락한 형제를 대하는 것처럼 친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주는 스승으로서 대원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비엔티안 중고교 학생들이 ‘야구의 불모지’ 라오스의 청소년으로서 한국에서 온 야구 선생님들과 만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간다.

코이카는 지난해 2월 라오스에 대한 야구 보급과 교육, 각종 지원을 담당할 9명의 프로젝트 봉사단 1기 대원들을 모집해 파견했고, 이들 봉사대원들은 2개월 여의 교육을 마치고 비엔티안 중고교와 라오스 국립대학교에 배치되어 약 3개월 만에 남녀 2개팀 총 4개팀을 창단시켰다.

비엔티안 중고교 야구부는 5,6학년 학생들을 주축으로 남녀 각 20명씩 총 40명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야구부원들 모두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고교생에 해당하는 나이라는 점에서 이 팀은 비엔티안 고교 야구부라고 칭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듯하다.

 


이들은 코이카 대원이 나눠준 야구부 홍보 전단지를 접하고 야구부원이 됐다. 일부 학생들은 ‘런닝맨’과 같은 한국의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야구의 존재를 알게 됐고,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야구부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야구부에 가입했다.

비엔티안 고교 야구부원들은 방과후 특별활동처럼 야구를 시작했지만 우기이자 방학 기간이었던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동안 한국에서 오랜 기간 야구 지도자로 활동했던 박종철 대원의 지도 아래 매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7시간씩 이어진 야구 연습을 묵묵히 소화했다.

엘리트 야구 선수들도 견뎌내기 만만치 않은 환경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낸 셈이다.

이에 대해 최회빈 대원은 “라오스의 우기는 비가 새벽과 밤 늦게 많이 오기 때문에 한낮에는 그렇게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낮에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와 높은 습도 때문에 가만히 있기도 힘들다. 애들도 연습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것이고, 우리도 매일 운동장에 풀을 깎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잠시 후 야구부 학생들과 코이카 대원들은 연습을 위해 운동장으로 향했다.  

 

 

야구부 사무실 주변에서 연습을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은 코이카 대원들과 함께 일제히 사무실에서 볼과 배트, 글러브 등이 들어 있는 박스를 나눠 들고 운동장으로 옮겼다. 

마침내 연습이 시작됐다. 야구부원들은 줄지어 운동장을 돌며 러닝을 하는 것으로 워밍업에 들어갔고, 그러는 동안 오세영 대원은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 물을 뿌리면서 먼지를 가라앉혔다. 


러닝이 끝나자 야구부원들은 운동장에 둥글게 둘러서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에는 윤소희 대원이 코치 겸 도우미로 나섰다.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에 지원하기 전 트레이너로 현업에 종사했던 윤소희 대원은 스트레칭을 하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일일이 직접 교정해 주면서 재미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워밍업이 마무리 되자 이제 본격적인 야구 연습에 들어갔다. 라오스 소녀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기자는 살짝 긴장된 느낌을 갖기도 했다.

이날 연습은 다음 날 있을 라오스 야구 리그 ‘코이카컵’ 최종전을 치르는 남자 선수들을 위주로 진행됐지만 기본적인 캐치볼과 수비 훈련 등은 남녀 선수들이 함께 했다.

우선 2인이 1조로 마주 보고 캐치볼이 시작됐다.

아직 야구를 시작한지 수 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송구 능력에 개인 편차가 큰 상황에서 공을 잡지 못하고 뒤로 흘렸을 때 공을 멈춰줄 만한 변변한 그물망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자신이 잡지 못한 공을 줍기 위해 한참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반복됐다.

한 번쯤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캐치볼을 하는 선수들 중에 동료가 던진 공을 잡지 못해 한참을 뛰어서 공을 주워와야 하는 상황에서 동료에게 험상궂은 표정을 짓는 야구부원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공을 던지고 받았다. 자신도 모르게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거나 잡기 쉬운 볼을 어이없이 놓치는 순간이면 ‘까르르’ 하는 웃음이 터졌다. 낙엽 구르는 모습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나이라고들 하는 그런 시기에 이들은 야구공을 던지고 받으며 그런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오세영 대원은 “캐치볼을 하다가 공을 못 잡고 얼굴에 맞는 경우가 많다. 공을 경식구를 쓰지 않고 연식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지만 일단 맞으면 무척 아플 텐데 이 친구들은 공에 맞아도 잠깐만 쉬고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고 귀띔해 줬다.

야구를 통해 재미를 찾은 이면에 이들이 야구에 대해 지니게 된 진지한 태도와 팀을 생각하는 책임감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캐치볼이 끝나자 수비 훈련이 이어졌다. 봉사단원이 타격한 공을 플라이볼로 잡거나 땅볼로 잡아 1루에 송구하는 연습이었다.

남자 선수와 여자선수가 한 줄로 길에 늘어서서 차례로 프로젝트 봉사단 2기 박성준 대원이 쳐주는 공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운동장 바닥이 고르지 않고 조금만 뛰어도 흙먼지 때문에 눈앞이 뿌옇게 되는 상황에서 다소 먼 거리에서 쳐주는 공을 단 번에 잡아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코이카 박성중 대원으로부터 수비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는 끼(사진: 스포츠W 임재훈 기자)


하지만 야구부원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창공으로 날아오른 공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 때때로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에서 나올 법한 멋진 포구 장면도 볼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흔히 ‘알까기’(가랑이 사이로 공이 빠지는 상황)와 ‘만세’(날아온 공이 키를 넘어 뒤로 빠지는 상황) 장면이 속출했다.

그런 장면이 여러 차례 반복될 즈음 한 봉사대원이 “여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보뺀냥’이다. ‘괜찮다’는 뜻이다, 자기가 공을 놓쳐 놓고 저희를 보고 ‘보뺀냥, 보뺀냥’ 그런다.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웃음)

이 대원은 나중에 라오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도 ‘괜찮아 다음에 잘 할 수 있어’라는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런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보뺀냥’인 셈이다.

이어진 훈련은 수비와 주루 플레이 연습을 결합한 연습이었다. 여자 선수들이 주자가 되고 남자 선수들이 수비수가 되어 타구의 방향이나 상황에 따른 대처능력을 키우는 훈련이었다.

여자 선수들은 타석에서 시작해 1,2,3루를 거쳐 홈까지 들어오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그 상황에 따라 뛸지, 기다릴 지를 결정하고 런다운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을 통해 경험을 체득했다. 

 

▲3루에서 홈을 파고들 태세를 취하고 있는 앤(사진: 스포즈W 임재훈 기자)


3루 주자로 나가 있던 앤이 3루에서 4~5보 정도 리드하고 있다가 타구가 플라이볼로 외야로 날아가자 재빨리 3루로 돌아와 베이스를 밟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홈으로 파고들 대비를 취하는 모습에서 반복된 훈련을 통해 야구 룰을 제대로 이해하고 주루 플레이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약 90분에 걸쳐 진행된 연습은 모두 끝이 났다. 벌써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써가며 맨땅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던 야구부 선수들은 차분히 장비를 정리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인 11일은 라오스 최초의 야구 리그 제1회 ‘코이카컵’이 2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 하는 날이자 폐막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날 비엔티안 고교 선수들은 비엔티안 외곽에 위치한 DGB야구장에 모였다. 

 



국내 금융기업인 DGB금융그룹에서 거액을 투자해 건립된 라오스 최초의 국제 규격 야구장에서 남자 선수들은 라오스 국립대 ‘뉴올 미라클’ 선배들과 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여자 선수들은 역시 라오스 국립대 뉴올 미라클과 짧은 시범경기를 치렀다.

붉은색 상의, 흰색 하의의 말끔한 야구복으로 갈아입은 라오스 야구 소녀들의 모습은 전날 만났던 그 소녀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비엔티안 고교 여자야구팀 주장이자 에이스 투수인 남폰은 이날도 어김 없이 마운드에 올랐고, 생전 처음 올라본 마운드에서 투구를 했다.

평지에서 공을 뿌리는 것과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투수 입장에서는 마운드 위에서 좀 더 위력적인 공을 뿌릴 수 있지만 평지에서만 투구 연습을 했던 남폰에게 낯선 마운드는 오히려 투구 밸런스를 잡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마운드에서 투구하고 있는 남폰(위)과 폐막식에서 베스트 플레이어상을 받은 남폰


그럼에도 남폰은 대학생 언니들을 상대로 과감하게 공을 뿌렸다. 공격에서도 팀의 톱타자로 나와 안타를 치고 진루했다.

결국 시범경기에서 비엔티안 고교 여자 선수들은 라오스 국립대 뉴올 미라클 선배들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남폰은 오후에 열린 대회 폐막식에서 ‘베스트 플레이어’ 상을 받았다.

그리고 비엔티안 고교 여자 선수들은 사상 첫 라오스 리그에서 4승4패라는 5할 승률을 기록하며 2위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서 야구를 직접 접하는 기회를 가진 비엔티엔 고교 여자 선수들은 과연 지난 1년간 야구를 통해 무엇을 얻었고,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코이카 대원들과 라오스 야구 소녀들의 생각은 어느 정도 일치했다.

야구를 통해 개인이 아닌 팀을 생각하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팀 스피릿’을 할 수 있는 태도와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었다.

 

 

류수민 대원은 “이 친구들이 기본적으로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많았지만 야구를 통해 변화해 가는 모습을 확인할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세영 대원은 “평소 선수들에게 야구는 팀 스포츠라는 부분을 강조했다”며 “아이들이 처음엔 경기에서 한 번 지면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참 많이도 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구가 팀으로 하는 스포츠라는 생각이 자리 잡히면서 변화해 갔다”고 말했다.

끼 역시 “야구는 팀 스포츠로서 9명이 서로 이해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는 운동이기 때문에 팀 스피릿을 키우는 데 굉장히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비엔티안 고교에서는 야구팀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야구가 학생들의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인성적인 면에도 이와 같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야구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5학년과 6학년 학생들 위주로 야구부가 운영이 되지만 저학년 학생들도 야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야구부에 들어오고 싶어한다는 것이 현지 봉사대원들의 전언이다.

 

▲위양수완 비엔티안 고교 교장(가운데 흰색 상의)과 야구부원, 봉사단원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임재훈 기자)

 

위양수완 비엔티안 고교 교장은 “야구가 학생들이 방과 후에 즐길 수 있는 체육활동으로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며 “그 전에는 축구나 배드민턴, 세팍타크로 정도가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으로 하는 스포츠였는데 야구가 들어오고 나서는 5,6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야구 붐이 일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라오스의 모든 고등학교를 대표해서 비엔티안 고등학교가 코이카의 야구 프로젝트 봉사 사업의 대상학교로 선정된 것이 무척 기쁘다”며 “학생들이 코이카 봉사단원들을 잘 따르고 있고, 코이카의 지원으로 야구 장비도 많이 확충됐다. 아직 운동장이 야구를 하기에 미흡한 점이 있어 앞으로 이를 보완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 지역 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최근 ‘꽃보다 청춘’, ‘뭉쳐야 산다’ 등 국내 TV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면서 일부 지역이 여행지로 각광 받고 있지만 인접국인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아직은 우리에게 ‘미지의 땅’으로 인식되는 나라다.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곳 라오스의 청소년들과 한국의 청년들이 야구를 통해 서로 교감하며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잊지 못할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한편, 코이카의 라오스 야구 프로젝트 봉사단 사업기간은 3년으로 오는 2021년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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